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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살이 되었다

by 판교CSR 2023. 12. 22.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Ho logos sarx egeneto)

말씀이 살이 되었다. 요한복음의 이 구절은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같은 말씀이 살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그 말씀이 바로 예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신학을 논하면서 누군가를 개종할 생각이 없습니다. 예전 심리상담을 공부할 때 지도교수(advisor)님의 말씀을 금지옥엽처럼 받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흥미로운 배경을 지닌 분이었어요. 그리고 그 배경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분입니다. 장로교(Presbyterian)에서 설교를 하고, 루터교(Lutheran) 상담 센터에서 심리상담을 하며,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요.

"Don't preach in the counseling." (상담할 때 가르치려 들지(설교) 마라)

 

이 자리가 물론 상담은 아니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신앙의 영역은 성경을 말하고 신학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이 아니라 다분히 개인의 선택이자 결단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영어로 이렇게 말합니다. None of my business. 성경을 읽고 신학을 논하는 것은 신앙과 관계없이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고스(이성/말/언어/관념 등)가 살이 되었다는 글귀는 2000년 전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몸이 이성의 감옥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이성이 몸으로 들어간다고? 감옥으로?라고 흠칫 놀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저자는 말했습니다.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고.  

 

성경의 표현들은 보통 그렇습니다. 과학적인 혹은 역사적인 사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즉, 사실보다는 진실 혹은 진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 역시 동사를 과거형으로 쓴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썼습니다 (우리말 번역이라 부득이하게 과거형으로 번역하긴 했습니다만).

 

이 표현은 단지 2000년 전의 육화 사건, 예수의 강생만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우리 가운데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말(씀)이 살과 피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경험이든 긍정적인 경험이든 누군가의 말이 혹은 나의 말이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살과 피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심리 상담을 3년간 했던 분이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오랜 시간 고생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3년간의 심리상담을 마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분을 보면서 저는 경험했습니다. 이 분을 변화시킨 것은 상담사인 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삼 년 동안 나눈 말, 즉 대화가 이 분에게 새로운 살과 피가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서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그러면 기독교 신자였냐고요? 아니요, 종교에 관심이 없던 분입니다. 제가 그분을 기독교 (그리스도교의 한문 표기)로 인도했냐고요? 아니오. 종교를 갖게끔 종교의 힘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냐고요? 아니오. 예수의 예 자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 음. 잠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 성당에 대해 얘기한 적은 있네요.

 

내담자를 변화로 이끈 것은 종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심리 상담을 했던 저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입니다. 말씀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그를 배불립니다. 그를 자라나게 합니다. 그를 어려움으로부터 구해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말의 힘이 큰지를 느낍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저자는 말의 힘, 말이 살과 피가 되는 힘, 삶의 진리를 우리가 마주하게끔 복음을 쓴 것입니다.

 

저는 내담자와 나누었던 대화가 그 분만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저 역시 말이 저를 살찌우는 것을 경험합니다.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 분노, 불안과 공포, 증오가 기쁨과 환희, 안정감과 평온함으로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말(씀)이 돌고 돌아 저에게도 돌아옵니다. 그렇게 말을 통한 대화는 두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이기주, 말의 품격

 

저는 요한복음의 글귀나 이기주 씨의 표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종교를 믿고 안 믿고 가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서 진실 혹은 진리를 체험하고 있는가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도 이기주 씨도 말이 지닌 새 삶을 창조하는 힘 혹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여러분은 어떠셨으려나요? 나의 말이 누군가를 살찌우고 성장시켜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했을까요? 아니면 파괴의 힘에 사로잡혀 상처를 주는 말로 하루를 보내셨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