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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될 수 없는가 I

by 판교CSR 2023. 12. 22.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번뜩 생각났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어떻게 철학같이 쓸데없는 학문을 삶의 무기로 쓸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철학이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쓸모가 없냐면요. 한국 사회에서 쓸모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문제를 빨리 풀어내야 다음 문제를 빨리 풀 수 있고, 그래야 시험 답안지를 시간 내에 작성할 수 있고요. 사회에 나와서도 프로젝트를 “빨리”해내기 위해서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쉬는 시간에도 핸드폰으로 시각적 자극을 줍니다. 우리 몸과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철학은 이성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그러니까 깊은 생각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처럼 빨리빨리 결과물을 내야 하는 사회, 쉬는 쉬간에도 두뇌에게 쉼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는 쓸데없죠. 매우 쓸모없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야마구치 슈라는 비즈니스컨설턴트가 쓴 책이더라고요. 철학자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심지어는 칼 뱅같은 신학자들까지 언급하면서 요약을 잘해두었더라고요.

 

철학자의 기본자세는 비판입니다. 칸트가 이걸 참 잘했었죠. 비판. 또, 책의 저자 역시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저도 칸트를 따라서, 또 저자의 가르침에 따라서 비판(critique)이라는 걸 해보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나서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어요. 제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책 비즈니스를 잘해서 저자가 철학을 삶의 무기처럼 쓸 수 있게 된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철학은 생각의 과정을 돕는 학문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낸 결론을 가지고, 그러니까 “결론은 이런 뜻이고 이렇게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어.”는 글쎄요. 철학자들과 그들의 결론을 나열한다고 해서 철학을 잘 배우고 있는 것인가에는 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어떤 얘기를 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얘기를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된 것인가가 더 중요하죠. 백과사전처럼 플라톤이 이데아를 얘기했고, 데카르트는 무슨 얘기를 했고, 칸트는 어떻고 저떻고는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철학을 배워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 준다는 점이다.”

철학을 배워야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문제는 철학을 배웠냐 안 배웠냐가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훈련을 했느냐 안했느냐겠죠.

 

사실 철학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해요.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이요. 그러니까 본질은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기회와 시간입니다.

 

철학을 배웠다고 해서 불확실한 삶을 돌파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건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요. 삶은 불확실합니다. 확실한 게 하나도 없죠. 그래서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불안하면 뇌의 변연계가 작동합니다. 심장이 요동치고 혈액순환이 빨리 이루어집니다. 근육이 재빨리 동작하기 위해서 긴장하고요. 터널 시야 현상(tunnel vision)으로 동공이 축소되면서 시야가 좁아집니다. 즉 몸은 스트레스 상황과 싸우느냐/도망치느냐를 준비합니다. 이럼으로써 대뇌피질의 동작이 잠시 중단됩니다.

 

철학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부분인 대뇌피질을 활발하게 동작할 때 이루어집니다.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몸은 대뇌피질의 동작을 중단시키고 변연계가 더 잘 작동되어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거나 돌파 (fight or flight)하도록 합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불확실성은 철학으로 돌파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삶의 불확실성을 느낄 때는 철학보다 명상(mindfulness)이 도움이 됩니다. 교감 신경을 진정시키고 뇌를 쉬게 하는 게 철학보다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몸이 대뇌피질을 동작시키기 시작해서 종극에는 멈춰서 생각할 수 있게 하거든요.

 

다음번 주제는 책에서 쓰인 주제들을 하나씩 다뤄가면서 저자가 피상적으로 유명한 말씀들을 인용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아! 재밌겠다. 설렙니다.